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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다이어리

제목 2018년 9월 8일 서울 답사를 다녀 와서 3
작성자 최** 작성일 2018-09-14 15:14:44




 예전 수도 여고 자리 앞을 지나는 도로 남쪽에 철조망 담장이 보이는데, 용산 미군기지 북쪽 자락이다. 이 자락은 1906년 용산 지역에 일본 군영지가 조성 될 때 연병장 이었다.  - 용산 군영지의 확장에 따라 새로운 연병장이 조성되었는데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주변 지역 이었다. -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남영역/남영동은 원래부터 불려지던 마을 이름이 아니라 해방 직후인 1946년 10월 일본식 지명 잔재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종전의 연병장에서 유래된 ‘연병정’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명칭이다.

 즉 ‘연병정’이라는 이름은 러일 전쟁 직후 용산 일대에 일본 군영지가 조성될 당시 이곳에 연병정이 있었기에 생겨난 것이다. 남영 글자 그대로 남쪽에 위치한 병영 곧 일본 군대의 용산 병영을 뜻하는 것으로 일본 군대의 침탈 흔적으로 남겨 놓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 이미 연병장은 사라졌으나 ‘연병정’은 전차정류장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사진은 <경성과 인천>(1929)에 수록된 연병정 전차분기점의 모습.

 용산 연병장 터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신광 여자 고등학교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태평양 전쟁 시기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설치 운영 되던 곳으로 비교적 최근까지 포로수용소 시절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일제가 침략 전쟁을 벌이는 과정 속에 1942년 다수의 영국군 포로를 잡게 되자 만들어 진 것이 연합군 포로 수용소였다. 1,000명의 포로 가운데 절반은 경성에 나머지 절반은 인천에 수용 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의 흔적 그리고 냉전과 남북 분단의 산물로 기억되다가 지난 2004년 반환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 아직 반환 절차가 종결 되지 않은.. 기억과 성찰의 땅&지역 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 답사, 마지막 여정은 식민지 역사 박물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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