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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다이어리

제목 2018년 9월 8일 서울 답사를 다녀 와서
작성자 최** 작성일 2018-09-12 14:01:04




서울 답사를 다녀와서 1.

 설렘임과 기대 속에 답사 출발지에 도착하여, 함께 할 사람들을 기다라며 바라본 하늘은
황 일상의 詩 < 비는 그리움처럼 내리고 >에 묘사 된 하늘과 같아 보였다. “빈 하늘 무채색 구름 되어 하염없이 비가 내립니다.” 물론 비가 내려 답사를 방해 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답사는 해방촌에서 모여 출발 하는 여정 이다. 본디 해방촌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또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으로 첫 답사 장소는 해방촌의 입구에 해당하는 ‘108 하늘 계단’이다.

 ‘108 하늘 계단’을 다시 가보니 공사 중이라 공사 후엔 주민들이 에스컬레이터로 편히 오르게 된다. 이 계단은 일제 말기에 조성된 경성 호국 신사로 오르던 길이었다. (경성) 호국 신사는 그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의 분신에 해당 되는 곳이다. 

 
주 : 인터넷 이미지로, 현재는 공사 중이라 사진과는 다르다.

 군국주의 체제와 전쟁을 독려하는 수단의 하나로 건립된 경성 호국 신사 영역에 앉아 설명을 듣는 청소년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하다. 답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나이는 다양했지만 십대가 가장 많았다. 청소년들이 답사에 많았던 것이 단지 여유 시간이 많아서 일까?

 이어지는 여정은 카마쿠라보육원 터→김상옥 의사 항거 터→ 조선은행 사택지→삼판 소학교터→용산 중학교 터→경성제2공립여학교 터→용산 연병장 터→연합군 포로수용소 터→식민지 역사박물관이다. 

 조선 시대 전생서(조선시대 국가 제사에서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가 있던 자리에 위치한 카마쿠라 보육원의 역사는 이러하다. 이곳의 운영은 1921년 이후 소다 카이치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소다 카이치의 묘지는 양화진에 있다. 소다 카이치는 1905년 이래 황성기독교청년회관(현재의 YMCA)에서 일본어 교사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해방 이후 옛 카마쿠라 보육원 자리는 1947년 영락 교회(한 경직 목사 설립)가 불허 받아 1948년 서울 보린원으로 재건되었으며, 1956년에는 영락 보린원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락 보린원 입구에서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61년 5월 여생을 우리나라에서 보내기 위해 재입국하였던 일본인이 운영하던 보육원은 당시 조선인 고아 와 미아를 양육 하던 곳으로 소다 카이치의 삶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몫이 아니더라도 다음의 말씀을 떠 올리는 것은 우리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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